새민련이 진 이유?


만약 이글루스 뉴벨에서 가상 선거를 해본다고 치자.

너 같으면 새날이나 사바욘이가 후보자로 나왔을때 찍어주고 싶겠냐?

차라리 조커를 찍고 말지.

by 빛나리 | 2015/04/30 17:09 | 트랙백 | 핑백(1) | 덧글(25)

요즘 들어서 다시 머리속에 떠오르는 명문




옛적부터 시체가지고 선동해서 폭동일으키던 것은 종북좌파들의 전유물이었지.
이번에도 진짜 예상을 한치도 빗겨나가지 않았네...




<대한민국 선동지혈사>


1. <1946 년 10월 2일> 대구폭동사건

 

수천 명의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시위대는 홑이불을 덮어 떠메고 다니던 문제의 시체를 경찰서 앞에 뉘어 놓고 외쳤다. "무차별 발포로 죽은 불쌍한 인민을 살려내라", "살인경찰을 처단하라", "경찰은 무장을 해제하라", "대구시민 여러분! 무고한 인민의 죽음에 대한 보복은 이 때를 두고 다시는 없습니다." 이에 흥분한 군중들이 너도 나도 합세하기 시작했고, 대구 경찰서는 순식간에 포위되었다. 피의 숙청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시위대가 들쳐 메고 나온 이 시체는 경찰의 발포사건과는 전혀 무관한 신원불상의 콜레라 사망자의 시체였다. 해부관찰용으로 도립병원에서 안치 중이던 이 시체를 전날 밤 최무학 등 대구의대생들이 탈취하여 시체데모에 써먹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그들의 전략은 성공하였고 170명의 사상자를 낸 끝에 종결되었다.

 

 

 

 2. <1947 년 3월 1일> 제주 3.1사건

 

제주도 남로당 위원회는 3.1절 기념식에 대대적인 군중을 동원하여 당초에 집회가 허용된 북국민학교를 벗어나 시가행진을 시도하였다. 이를 해산시키던 과정에서 집회를 구경하던 한 어린이가 기마경찰의 말에 채여 쓰러졌다. "아이가 다쳤다"는 외침이 곧이어 "경찰이 아이를 죽이려 한다"로 바뀌고, 잠시후에는 "경찰이 아이를 죽였다"로 반전되었다. 그러나 이 아이는 죽은 게 아니고 다쳤을 뿐이었다. 남로당 시위대는 어린 아이의 시체라며 떠메고 다니면서 "양키야, 미제놈아, 그 앞잡이 살인귀놈들아! 이 어린 것을 살려내라! 미제야, 앞잡이놈들아 당장 물러가라!"고 외치며 더욱 격렬한 시위를 선동했다. 이에 흥분한 수천명의 시위군중이 경찰서를 포위하였고 피습의 위기에 처한 경찰이 위협발포를 한 것에 시위대 수명이 사망하게 되는 사태로 확대되었다. 이 제주 3.1발포사건은 4.3사건의 불씨가 되어 수많은 제주도민의 목숨을 앗아갔다.

 

 

 

3. <1948 년 4월 3일> 제주 4.3사건

 

 "집에 있으면 육지경찰이 다 찾아내어 죽인다"고 겁을 준 후 사람들을 피신시킨다는 구실 하에 산 위로 끌고 올라갔다. 저항하는 자는 죽였고 도망가는 자도 죽였다. 영문도 모른채 산 위로 올라간 제주도민들은 졸지에 빨갱이로 낙인찍혀 그 어느 곳에서도 살 수 없는 불귀의 객이 되었다. 최초의 학살은 누구의 손에 자행되었던가. 때로는 서청단원으로 둔갑해 멀쩡한 마을 하나를 없앴으며, 인민군이 곧 온다고 속여 수많은 사람들을 산위에서 굶겨 죽였다. 항쟁이라는 터무니없는 굿판에 내몰린 죄없는 영혼들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채 말이 없고, 산 者들은 그들대로 농락당했다. 희생자는 부풀려졌고 인민유격대의 원죄는 간데없이 죄다 해방전사가 되었다. 8만여 이재민은 사망자 숫자로 둔갑되어 교과서에 오르내리고,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조차 군경의 고문과 학살에 희생당한 것처럼 버젓이 기술되었다.

 

 

 

4. <1948 년 10월 19일> 여순반란사건

 

 "동족상잔의 제주도 출동을 반대한다", "38선을 철폐하고 조국통일을 이룩하자", "북조선 인민군이 남조선 해방을 위하여 38도선을 넘어 진격중이다", "우리는 북상하는 인민해방군으로 행동한다" 이에 놀란 시민들과 군경들은 너도 나도 앞다투어 그들 편에 섰다. 순식간에 빨갱이가 된 것이었다. 동족을 학살할 수 없어 출병을 거부했다던 사람들이 죽인 민간인 숫자는 무엇으로도 해명할 길이 없는데도 전교조는 오늘날 이 사건을 "항쟁"이라며 어린 학생들을 선동한다. 반란이 진압된 뒤에도 그들은 또 한번의 학살극에 목숨을 내던져야 했다. 한편 이 여순반란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선무공작 위주로 진행되었던 제주 한라산 토벌작전이 강경진압으로 표변하게 되고 수많은 인명피해를 가속시켰다.

 

 

 

5. <1950 년 6월 25일> 6.25사변

 

미군이 6·25때 민간인을 무려 300만이나 학살했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집단적 생매장, 통풍이 되지 않는 건물에 감금하는 질식사, 굶겨 죽이기, 휘발유와 장작불로 태워 죽이기, 눈알을 빼며 귀와 코를 도려내며 산채로 톱이나 칼로 사지를 자르며 피부를 벗기며 불에 달군 쇠로 지지며 산 사람을 땅크로 깔아 죽이며 임신부의 배를 갈라 죽이는 등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야수적 학살방법을 꺼리낌없이 감행했다" 고 합니다. 이 잔인한 미군의 학살 중 가장 큰 규모로 진행된 곳이 황해도 신천, 안악, 강원도 양양이랍니다. 신천군의 경우 군내의 총인구의 1/4인 35,383명이 학살되었고 그 가운데 어린이, 노인, 부녀자들이 무려 16,234명이나 된다고 하네요... 아! 정말 몹쓸 미군이죵. 그런데 알고보니 이 신천군 학살은 미군과 아무 상관없는 비극이고, 주민들간에 물고 물리는 보복살육극으로 판정났네요. 어쩌죠? 강정구 아저씨?

 

 

 

6. <1950 년 7월 26일> 노근리학살

 

 "갇혀 있는 굴 밖으로 물을 뜨러 나가면 곧 죽음이기 때문에 그들(피란민)은 물 대신 시체에서 나온 핏물을 혀로 핥았다. 죽은 어머니의 젖을 빨면서 울어대는 아이도 있었다. 그 아이는… 여기저기 다니면서 젖 대신 피를 꿀컥꿀컥 삼켰다."(월간 '말' 94년 7월호 중에서) 아무리 노근리 학살의 비극을 전하고 싶었다지만 이런 식의 끔찍한 픽션적 나래이션은 듣는 이로 하여금 혐오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노근리 학살사건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당시 전투상황과 배경은 깡그리 무시하고 민간인 살육에만 촛점을 두어 이런 식으로 적개심을 고취시키려는 자들의 저의는 진상규명에 있지 않을 것 같다.

 

 

 

7. <1968 년 2월 1일> 경부고속도로 착공

 

 "농지도 부족한데 뭔 놈의 고속도로냐", "쭉쭉 뻗은 길을 졸부들만이 예쁜 아가씨를 차에 태우고 질주할 것", "경부고속도로로 국토를 갈라 호남민들 다 굶겨 죽일 셈이냐" 곡괭이 들고 몰려가서 굴착기 앞에 드러눕고 나를 밟고 넘어가라며 개지랄을 떤 덕분에 당시 국민들에게 좋은 소리 좀 들었다지요. 두 분다 훗날 전직 대통령의 자리에 올라 나라 말아먹는데 일조들 하셨다지요. 이건 동의 하지 않으실라나? ^^;

 

 

 

8. <1980 년 5월 18> 광주사태

 

 "맨손인 시민들은 도리어 칼질을 당하였고", "5.18 첫날 최소 40여명이 백주에 공수부대의 대검에 의해 죽어갔으며", "여학생은 광주의 분수대에 발가벗겨지고 유방을 도려내인채 매어져 죽어갔다", "도청 앞에서 공수부대가 한 임산부의 배를 갈라 태어를 꺼내 죽였다", "전라도 사람 씨 말리려고 경상도 군인만 뽑아왔다", "광주시민의 70%가 죽었다", "계엄군에게 흥분제를 먹였다"...기타 등등 필설로 표현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다. 이런 유언비어들이 아무런 거부감 없이 광주시민들에게 받아들여졌던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지금도 이 유언비어를 내용으로 학생들은 역사를 공부하며, 잠재적 분노와 페이소스적인 경멸을 가두고 있는지 모른다. 대학시절 아무렇지도 않게 불렀던 노래에도 있지 않은가.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 5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가슴에 붉은 피 솟네" .. 대검으로 유방을 두부처럼 자를 수 있는 차력사가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불과 얼마되지 않았지.

 

 

9. <2002 년 6월 13일> 미선, 효순양 사망

 

"미군이 장갑차로 여중생을 따라가며 깔아죽였다", "여중생 가족들을 입막음 할려고 60만원을 건넸다", "저희 형이 카츄사인데 여중생 시체사진 보고 미군들이 박수치고 웃었다고 그러더군요...", "우리민족이 힘을 합쳐 미제국주의를 몰아내자" 월드컵 4강 진출로 온 국민이 들떠 있던 당시 전국을 반미의 소용돌이로 몰고간 이 사건은 그 해 대통령 선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그 결과 "반미"면 어떠냐는 깽판정권의 탄생에 일조하게 됐다.

 

 

10. <2003 년 7월 26일> 부안사태

 

"부안은 지금 제2의 광주", "부안에 8천이 넘는 폭력경찰의 '계엄통치'가 자행되고 있다. 최소한의 평화적인 촛불시위도 보장하지 않은 채 노인, 어린이, 임산부 할 것 없이 방패와 곤봉으로 피를 낭자하고 있다", "임산부 하나를 전경들이 전경들 틈으로 끌고가서 옷을 뜯고 방패로 옆구리를 찍는 등 집단 폭행을 가해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는 중입니다", "부안주민 여러분, 우리와 함께 해주십시오", "부안은 제2의 동학농민전쟁이자 민란"

 

 

11. <2006 년 5월 6일> 평택사태

 

 "국군이 국민을 짓밟고 있습니다, 공권력이 인간사냥을 하고 있습니다", "평택은 피바다, 전쟁보다 참혹...계엄상황 방불", "밤새 마구잡이 인간사냥도 모자라 농가까지 방화", "연행과정에서 여성이 옷이 벗겨진 상황에서 연행하고, 옷 속으로 손을 여성의 신체부위를 만지고, 허벅지를 만지는 등이 성추행을 자행", "군대+경찰+용역깡패 합동 폭력진압작전이 결국 끔찍한 유혈사태를 야기, 일반 시민들 1천여명이 어제 하루 군홧발과 곤봉에 짓밟히고 으깨지는 참사가 발생, 대추분교 완전 초토화", "주한미군 살리고 자국민 죽이고, 군대까지 동원 국민 짓밟아", "곤봉에 얼굴맞아 민간인들 피흘리며 쓰러져"

 

 

 

12. <2008 년 5월 6일> 광우종말교 사태

 

 "공기로도 전염", "돈가스를 먹어도 걸려", "화장품, 수돗물로도 전염", "키스해도 걸리고 채소만 먹어도 감염", "미국인도 안먹는 30개월 이상의 쇠고기", "미국인은 호주산만 먹어", "한국인 95%는 광우병 위험 유전자"와 같은 광우병 괴담에서 시작하여 "여대생 사망설", "임산부 폭행설", "여대생 강간설", "일본 여기자 사망설" 등등 촛불집회 시위괴담까지 광범위하게 만연 13. 그들의 선전선동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To be continue....

by 빛나리 | 2015/04/21 14:54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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